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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 2010/07/1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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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르비스

[크레딧에서 남자 김씨, 여자 김씨 로 나온고로 주인공들을 그리 칭한다]



유명한 영국 시인인 존 던 (John Donne)은 이리 말했다.

"No man is island." (아무도 섬처럼 고립되어 살수없다)

김씨 표류기는 그러한 메세지를 반복해서 플레이한다. 남자 김씨 (정재영)은 대출로 억대의 빚까지 얻고 애인도 잃어버려서,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김씨는 한강다리 위에서 사채회사로 전화하고, 자신의 빚을 읆어주는 상담원에게 이리 말한다, "덕분에 결심이 섰네요." 상담원은 그저 일을 했을 뿐이지만, 사실 남자 김씨의 등을 떠민것이나 다름 없다. 사채회사 상당원치고는 친절한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는 김씨의 등을 민 목소리이다. 사회를 대변하는 사채회사의 상담직원의 무관심이 개인을 죽인 것이다. 상담원의 친절한 "무관심"이 김씨의 등을 떠밀었고, 그렇게 김씨는 한강다리에서 뛰어 내린다.

한강에서 뛰어내린 남자 김씨는 아이러니하게도 밤섬에 떠밀려 내려온다. 그리고 63빌딩을 보면서 "63빌딩에서 떨어졌으면 확실히 죽었을걸" 하고 자신의 바보같음을 탓한다. 하지만 남자 김씨는 자살할려는 결심과는 달리 그 섬을 빠져나오려 한다. 그는 119에 전화를 하고, 헤어진 애인에게도 전화를 하고, 심지어는 통신사에서 걸려온 권유 상담원의 전화에도 살려달라 애원한다.  자살자가 뛰어내린 장소에 신발을 벗어놓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이 자살했다는 걸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신발도 안벗고 자살한 남자 김씨는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서 지워버리려 한것인데, 다시 살아나자 필사적으로 다시 사회에 속할려고 한다. 지나가던 보트에도 손을 흔들지만 어느보트도 남자 김씨의 절박한 상황을 모른다.

남자 김씨는 수영을 못하면서도, 밤섬을 탈출하려 무작정 물에 뛰어든 김씨는 익사의 위기에 처한다. 그는 주마등을 보게 된다. 어릴적에는 수영을 못해서 아버지에게 질책을 받는다. 수영은 배워두면 좋은 기술이지만, 아이가 익힐려면 누군가가 이끌어 줘야 한다. 아지만 아버지는 어린 남자 김씨를 수영 못한다는 사실을 질책할뿐, 가르쳐 주진 않는다. 또한 애인도 무능력하다며 남자 김씨를  떠난 것이 밝혀진다. 나쁜것과 무능력한것중 어느게 더 나쁘냐며 김씨의 무능력을 질타한다. 그녀 또한 김씨를 도와줄려는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며 질책할 뿐이다. 직장 면접또한 김씨가 정리해고 당한것을 무능력으로 볼뿐, 김씨가 허우적 거리며 설명하려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질책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김씨를 도와주거나, 가르쳐 주거나, 거들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운좋게도, 김씨는 다시 밤섬에 떠밀려 내려온다.

앞서 말한 전화 통화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을뻔 할때의 주마등, 무시하고 지나가버린 보트들로 대변되는 또 한번의 개인의 사정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김씨는 또다시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민방위 싸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그는 "죽는건 언제든지 할수 있다" 라며 다시한번 살아보기로 하고, 자살을 그만둔다. 민방위 훈련때는, 여자 김씨의 부분에도 나오지만, 이날만큼은 도시가 텅 비어버린다. 민방위 훈련때 자살을 그만둔 김씨. 민방위 훈련의 싸이렌은 김씨의 자살을 막음과 동시에, 사람과 단절되어 살게되는 김씨의 인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남자 김씨는, 단절되어 산다는 점에서 "자유"를 느낀다. 신용 불량이 되버린 카드의 무게를 느끼지 않아도 되고, 바지를 까발리고 바바리맨 비슷한 행동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다. 그는 최소한의 옷만을 입고 무인도 생활을 한다. 그는 자유속에서 처음으로 "집"을 가지게 되고, 아무도 방해하거나 자극하지 않는 완벽한 심심함을 느낀다. 그는 사회와 단절됨으로서 처음 사회의 중압감에 눌려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만끽한다.

여자 김씨(정려원)는 히키코모리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훔쳐서 웹상에서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구든 그녀의 미니홈피에서 올라오는 사진만 보고 친한 척 다가 온다. 그녀는 아픈 과거로 인해 (왕따로 추정) 사람들과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무관심 속에서 그녀의 가짜 인생은 진짜로 변하고, 그런 무관심은 여자 김씨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더더욱 촉진 시킬뿐이다. 그녀는 아무도 사람이 없는 달에서 살고 싶어한다. 매년 두번 잇는 민방위 훈련날엔 사람들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날을 좋아한다. 그녀가 단절을 택한 이유와, 단절이 촉진된 이유는 "사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를 발견한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꺼리낌없는 그의 행동에 그녀는 남자 김씨가 "외계인"이라 판단하고 남자 김씨를 관찰한다. 아마도 그녀는 남자 김씨가 모래에 쓴 HELP라는 글과 HELLO 라는 글로 바뀌면서, 그녀에게 접촉 시도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첫 "인간형 생물체"에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무관심한 사회의 인간들과는 달리, 남자 김씨는 여자 김씨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하려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과 같이 단절되어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클리닝 테이프를 봄으로서 리셋되어버리는 그녀의 인생에, 리셋 될수 없는 무엇인가가 생긴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사는 존재가 있다! 변태의 행동이라 보이는 남자 김씨의 행동은, 사회의 기준을 거부하고 혼자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짜 사이버 라이프를 뒤로 하고, 남자 김씨를 관찰하는데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자기 방을 나가 김씨와 대화하기로 결심한다. 단문의 글이 쓰여진 프린트를 출력해 병에 담은뒤, 섬으로 던지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운좋게도, 시간은 걸렸지만 남자 김씨는 그 병을 우연하게 발견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렇게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대화의 창이 생긴다. 여자 김씨는 그토록 싫어하는 "사회"의 도시로 나가서 (비록 밤이지만), 남자 김씨에게 편지를 전달한다. 남자 김씨는 매일매일 눈에 불을 켜고 그 병을 찾고, 답신을 모래위에 쓰고, 확실히 받았다는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하루종일 모래위에 쓴 메세지 옆에서 액션을 취한다. 이렇게 사회의 무관심에 질려 단절을 택한 두사람은, (아마도) 자신과 대화하려는 첫 존재에게 흥미와 정을 느낀다. 단문의 메세지지만 열성을 다해서 답해주는 남자 김씨. 정말 싫은 사회로 나가 밤에 편지를 던지는 여자 김씨. 서로서로 진심으로 메세지를 주고받는 둘은 아마도 그것이 처음 해보는 인간다운 대화였을것이다. 책임도 의무도, 사회가 강요하는 어떤것도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대화.

남자 김씨는 짜장면을 통해 여자 김씨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에게 밤섬에 짜장면을 배달 시킴으로서 순수한 마음에서 우려나오는 배려를 보여준다. 처음으로 받아본 순수한 배려에 남자 김씨는 직접 짜장면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짜장면은 남자 김씨의 희망이자 꿈. 또한 사회속에 남아있는 미련이자 후회이다. 그때 했었더라면, 과거에 했었더라면 하는 갈구로 다시한번 사회속에서 다시 해보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여자 김씨의 순수한 배려로, 남자 김씨는 새똥을 뒤져가며 밭을 갈고 작물을 가꾼다. 그리고 그 노력하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땀을 "맛있다" 며 햩는다. 순수한 노동과 열정으로 일하는 자신에게 자기애를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가 돌려보낸 짜장면에서 처음 "희망"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되고, 인간 사회에 대한 희망을 다시 갖는다. 아직,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로 희망을 다시 가진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휴대폰 문자로만 대화하던 엄마에게 직접 말을 걸어 "옥수수를 키워보고 싶다" 라고 한다. 생명을 키운다. 그것은 남자 김씨의 삶을 모방해 자신도 희망을 키워보겠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남자 김씨는 자연스레 자신의 대화상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지금까지 가짜 인생을 살던 여자 김씨는 그런 남자 김씨의 궁금의 표출에 당혹한다. 무관심한 "사회속의 인간"이라면 가짜 인생을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이사람은 "사회속의 인간"이 아니다. 진짜 자신을 어느정도 알고있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되어 싫어할까봐, 왕따했던 그 사람들과 똑같이 할까봐 겁이나서 대화를 중단하고 사이버 라이프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회는 무관심할지 언정, 가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짜 사이버 라이프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네티즌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비정한 처벌이 이뤄진다. 그녀가 그렇게 살게 된건 사회 탓임에 불구하고, 사회는 삐뚤어진 그녀를 처단한다. 그녀는 남자 김씨마져 자신에게 그럴까 두려워, 소통을 거부한다. 남자 김씨는 며칠째 소식이 끊기자, 그녀 또한 자신을 가차없이 대한 사회의 다른 인간들과 다른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비속어를 모래위에 써서 그녀를 힐난한다. 그런 메세지에 여자 김씨 또한 상처받아 자신의 방속의 방, "옷장 침대"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다. 

그날 밤, 폭풍이 몰아쳐서 남자 김씨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남자 김씨가 사회에서 단절되어 살아가기에, 사회속이라면 당연히 보호받을수 있는 태풍에 의해 모든 것을 잃는다. 아웃사이더에 대한 사회의 화살은, 태풍이 되어 김씨의 모든 것을 앗아 간것이다. 여자 김씨는 사냥당하여 잡혀가는 남자 김씨를 보고,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네티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 또한 비슷한 것을 당했기에. 자신이 커뮤니테이션을 끊음으로서 완전히 외로워 지고 사냥까지 당한 그녀는 자신이 남자 김씨에게, 네티즌이 자신에게 한짓과 다름 없는 짓을 한것임을 꺠닫는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녀는 대낮에, 헬멧도 쓰지 않고 달려간다.

그에게 다시 대화하기 위해. 한편, 해병대와 한강 환경 보존 요원들에게 끌려서 다시 사회로 나온 남자 김씨는, 사회에서의 도주마저 허락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도주할 수 있는 출구인 죽음을 찾아간다. 확실하게 죽을수 있는 63빌딩으로. 더더욱 "삐빅"하고 찍히는 교통 카드는, 사회는 자신을 절대 잊지 않고 빚과 책임을 물어올것임을 재확인 해주었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남자 김씨는 운다. 그는 "사회에게 속았다" 는 배신감에서 울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회와 달리 순수히 대화를 하려던 여자 김씨의 편지가 그리웠던 것일까?

여자 김씨는 달리고 또 달린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저 매일매일 충실했다는 착각을 느끼기 위해 매일 만보를 달린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착각속의 노력이라도, 결실은 있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일까. 그녀는 달리고 또 달린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 겨우겨우 남자 김씨가 탄 버스에 근접하나, 그녀는 간발의 차로 남자 김씨가 탄 버스를 놓친다. 그녀도, 남자 김씨도 운다.

하지만 싸이렌이 울린다. 신호등도 초록불이다.

민방위 훈련. 모든 것이 멈추고 사람들이 없어지는, 그녀만의 날이 온것이다. 이 장면은 김씨가 자살할려 했다가 싸이렌에 멈춘것과 겹친다. 이 싸이렌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다시 히키코모리 인생으로 돌아가 사회적인 자살을 할것이다. 아니면 겨우 다시 얻을 희망을 잃어서 진짜 자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일종의 사회의 관습인 "민방위 훈련"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회로 부터 받아보는 도움. 그녀는 냅다 버스를 따라 달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만의 대화의 언어였던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숩으로, 현실에서 남자 김씨에게 한 말은 자기소개였다. 그리고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김씨표류기는 사회의 무관심과 대화단절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영화라고 할수 있겠다. 개인이 사라지고 사회간의 약속인 돈이 중시되고, 개인이 쉽사리 뭉개져버릴수 있는 단체의 잔인함을 비판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단체속에서도 개인으로 존재할때, 사회가 개개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희망의 영화이다. 영화의 중심 메세지는 남자 김씨의 말에 있다. "죽는건 언제든지 할수 있다." 아마 뒤에 이어질 말은, "사는건 언제든지 할수 없다" 일것이다. 살아라, 그것도 사회속의 개인이 아닌 사회를 이루는 한 개인으로서. 감독은 그런 메세지를 전하려는게 아니었을까?



평가: 4.5/5.

야자 김씨의 과거가 의문스러운 점에서 0.5점 감소.
Posted by 자르비스